함께 있어 정말 행복했습니다-장봉혜림재활원에서 보낸 이틀




 도전, 또 도전했건만 교보생명에서 주최하는 가족자원봉사캠프에 참가하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란 말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어찌나 인기 있는지... 체험학습현장에 가고, 유적지를 방문하는 것도 좋지만 봉사를 통해 더 큰 보람과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생각했기에 여러 번 도전했지만 매번 미역국. 교보생명과 나와는 인연이 없는가 싶어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교보생명에서 마련하는 프로그램은 하나같이 욕심나는 것들뿐이다. 철새 먹이주기, 장애인과 함께하는 농촌체험, 사진 봉사, 바다지키기, 에코테라피 및 가드닝 봉사 등. 봉사라고 하면 목욕봉사나 식사 수발을 든다든가 청소를 하는 정도만 생각했는데 교보생명에서 봉사의 영역을 다양하게 펼쳐 보여줬다는 면에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이번 8월 캠프는 못가면 어떡하나 조바심이 날 정도로 참가하고 싶었다. 지난 2001년 교통사고로 남편이 몇 달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기에 아픈 이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게 첫 번째 이유다. 우리 가족은 1년 동안 가족자원봉사단으로 장애아동을 돌봐왔는데 상태가 너무 심한 다운증후군 남자 친구를 맡은 탓에 딸아이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아무데서나 바지를 내리고, 전혀 말이 안 통하다보니 비장애인과 절대 어울릴 수 없다는 생각-이 잘못 자리 잡았기에 이를 바로잡아주고 싶다는 욕심이 두 번째 이유다.  

 아무튼 정성껏 지원서를 썼지만 80여 가족이 넘는 지원자가 있다는 걸 알고 이번에도 안되겠구나 자포자기 상태였다. 하지만 이런 내 마음이 통했는지 기적처럼 선정자 명단에 오른 것을 확인했을 때 정말 뛸 듯이 기뻤다.

 캠프 당일까지 교보생명과 장봉혜림재활원 측에서 보여준 정성은 얼마나 감동스러웠는지. 일정표와 바뀐 내용, 티셔츠 치수는 어떻게 할 건지, 현장에서 하고 싶은 프로그램은 무엇인지 등등 얼마나 여러 번 이메일을 보내주시던지. 아이나 나나 몇 번 캠프에 참가해본 경험이 있지만 이렇게 살갑게 챙겨주는 담당자는 처음이다. 송헌석 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 또한, 장봉혜림재활원 쪽에서도 교통수단은 어떻게 할 건지, 준비할 옷과 신발에 대해서 전화로 일러주시는 등 캠프에 참가하기 전부터 정말 좋은 시간이 되겠구나 하는 확신을 안겨주었다.

 드디어 8월 28일 당일, 안산에서 인천대교를 넘고 넘어 삼목항으로 달려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우리 집 늙은 애마가 갑자기 방전되는 바람에 다른 차로 점프를 하고, 난리를 친 끝에 출발할 수 있었다. 배 시간이 정해져있었기에 혹시 그 시간까지 도착하지 못하면 어쩌나 얼마나 조바심을 쳤는지 모른다. 다행히 시원하게 뚫린 길을 따라 시간 맞춰 모임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전화 통화로만 만났던 교보생명 송헌석 씨를 뵙고, 출석 체크(?) 후 배에 올랐다.

 2층 대합실에 모두 모인 자원봉사 참가 가족들. 처음 만나는 이들이지만 봉사라는 남다른 자리의 의미를 알고 온 이들이라서 그런지 다들 참 인상이 좋고, 어디선가 본 분들 같았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우리를 인솔해준 장봉혜림재활원 직원분이 탤런트 뺨치게 잘 생긴 남자 사회복지사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주의사항을 듣고, 나머지 시간엔 가족들과 갈매기한테 새우깡도 던져주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다.

 1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을 달려 드디어 장봉도에 도착했다.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혜림원쪽에서 고맙게도 여러 대의 차량이 우리를 맞이하러 나와 계셨다. 혜림원에 도착해보니 여느 복지시설과 달리 무슨 펜션에 온듯한 느낌이 들었다. 혜림원은 본래 부천에 세워졌지만 장애인을 기피하는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85년 이곳 장봉도로 옮겨오게 되었다. 이후 그룹 홈 형태로 운영되며, 인천 지역에도 체험 홈이 설치되고, 장애인들이 작업장에서 일하며 삶을 가꾸는 아름다운 곳으로 거듭났다.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이곳까지 배삯을 부담하며 정기적으로 자원봉사를 하러 오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여름이나 주말에는 연수원으로 제공되기도 하는데 예쁜 해수욕장을 눈앞에 둔 장봉혜림원에서라면 어떤 행사도 즐겁게 진행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행사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이 실시됐다. 장봉혜림원의 걸어온 길을 영상으로 감상하고, 일정에 관해서 안내받았다. 숙소는 ‘노을1’. 여러 가족과 함께하는 숙소를 배정받았다. 가운데 마루가 있고, 각각 방이 있는 형태인데 프로그램 중간 중간, 그리고 첫날 저녁 포도를 먹으며 서로의 참가 동기, 느낀 점 등을 나누었다. 어쩜 그렇게 말이 잘 통하는지 인복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착해서 먹은 첫 번째 점심, 장애인들도 이용하는 곳에서 식사하는데 갑자기 맞닥뜨리니 조금 긴장되었다. 아이도 몸을 움츠리며 나한테 찰싹 달라붙었다. 점심은 정말 꿀맛이었다. 아이는 집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낫다며 엄마도 이렇게 해달라고 구박이다.^^;

 식사 후 장애인 그룹 홈 가족 가장과 담당 사회복지사와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곳은 그룹 홈 형태로 생활하는데 각 구성원별로 나이 많은 분이 가장을 맡는다고 한다. 우리 팀은 ‘사랑A’ 가족과 만났다. 이어 가족들이 사는 집으로 이동했다. 가장 임병훈 님, 그리고 김동수 님, 신동수 님, 성형주 님, 조일섭 님, 이강식 님, 박영만 님 등 모두 7분이 사는 곳이다. 각자 특징이 있다. 김동수 씨는 기억력이 비상해 신문에서 읽은걸 모두 기억한단다. 강식 씨는 기자처럼 주변에서 일어난 상황을 꼼꼼히 기록하길 좋아한다. 형주 씨의 웃음은 얼마나 해맑은지. 

   우리는 서로 말이 통할까,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지면 어떡하나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 이곳에 계신 분들은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있고, 또 글씨를 쓰고, 작업도 할 수 있는 분들이라 이야기 나누는데 별 불편함이 없었다.

 처음엔 다들 조용하시길래 원래 이런 분위기인가 싶었는데 복지사 님 말로는 그 분들도 쑥쓰러워서 그렇다고 한다. 참, 말이 나온 김에.. 여기 장봉혜림원에 계신 사회복지사들은 어찌 이리도 선남선녀들이 많은지. 우리 팀을 맡아준 손모아 선생님은 키 180cm에 날씬한 몸매, 얼굴도 얼마나 예쁜지 정말 연예계로 나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외모를 자랑하는 분이었다. 이런 분이 근무 환경이 결코 녹록치 않은 곳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한다는 것에 대해서 조금 놀랐다. 나중에 어떻게 일하게 됐냐고 질문하니 이 일이 정말 좋고,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시길래 또 한번 놀랐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사랑 가족들과 강당으로 이동해 대형 고스톱 치기 놀이를 했다. 고스톱 룰을 잘 몰라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다른 분들과 어울려 하다보니 그런 걱정은 필요 없었다. 한 가지 재미있었던 건 조용하던 사랑 가족들이 고스톱은 어찌 그리도 잘 치는지 우리 팀이 1등을 휩쓸었다는 것이다. 처음 이런 놀이를 해보는 딸아이는 처음엔 장애인 옆에 가는 것도 조심스러워 하더니 나중엔 먼저 손을 붙잡고 중앙으로 나아가 화투를 뒤집을 정도였다.

 이어 노래방 타임. 이곳에 계신 분들은 노래를 즐긴다고 한다. 음정, 박자가 잘 맞진 않았지만 옛날 노래부터 댄스곡까지 골고루 섭렵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장애인들이라고 하면 왠지 우울한 표정으로 방에서만 지낼 것 같은데 적어도 여기 계신 분들만큼은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드러내는 일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얼마나 흥겨웠는지 임병훈 가장님이 갑자기 나한테 와서 뽀뽀를 하려고 해 깜짝 놀랐다. 복지사님이 즐거워서 표현하는 것이니 너무 놀라지 말고 가볍게 거절하면 된다고 한다.

 저녁 시간엔 나와 이인재 님 가족이 함께 저녁을 준비했다. 남자 분들이 바깥에서 숯불에 삼겹살을 굽고, 우리는 상추와 과일을 씻고, 상을 봤다. 혜림원쪽에서 준비한 김치국이 너무 맛있었다. 사랑 가족 모두 참 맛있게 공기를 비웠다. 이렇게 많은 장애인들과 마주 앉아 밥을 먹는 건 처음이었지만 ‘다들 밥 조금 더 달라, 고기가 맛있다‘ 등 의사표시를 잘 하시니 이젠 어색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딸 아이도 배고프다며 사랑 가족 사이에 끼어 앉아 열심히 밥을 먹는다.

 저녁땐 다시 강당에 모여 흥겨운 레크레이션 시간을 가졌다. 퀴즈도 풀고, 게임도 하고, 풍선으로 미니 농구도 했다. 딸 아이는 무대에서 춤을 췄고, 어디 나서기 싫어하는 나도 억지로 끌려 나가 동작을 재현하는 게임에 참가했다. 이곳에서의 게임은 모두 점잖고(?), 몸치인 나도 잘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라 그다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마지막 순서로 풍등에다 소원을 적어 근처 바닷가에 나가 날리는 시간을 가졌는데 바람의 비협조로 순조롭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하지만 미니 불꽃놀이가 그 아쉬움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하루를 마감하며 꽤나 고단했나보다. 숙소의 다른 가족들과 이야기 나누다 나는 먼저 들어와 잠이 들었다. 정말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꿀맛이었다.

 둘째 날 아침, 혜림원내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사랑가족들도 모두 모여 있었다. 동수씨가 보이길래 아는 척 했는데 그냥 가버리는 것이었다. 처음엔 내가 부르는 소릴 못들었나 했는데 우리들이 가는 게 섭섭해서 일부러 모르는 척 한거란다. 그렇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스치듯 이곳을 거쳐갈까. 난 사람은 몰라도 든 사람은 안다고, 잠깐 머물다 가는 내가 언제 또 이곳을 찾을지 알 수 없으니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이곳에 오기 전 봉사활동의 종류를 정했는데 우리는 비누 만들기와 드라이브로 정했다. 안타깝게도 일정 내내 비가 오는 바람에 드라이브는 취소라는 말에 참 섭섭했다. 이왕 장봉도라는 곳에 온 김에 이곳이 어떤 곳인지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행운이... 비누 만들기를 신청한 가족이 우리뿐이란다. 그런데 그 작업 과정이 짧아 시간이 많이 남다보니 선생님이 차로 우리를 안내해주겠다고 한다.

 덕분에 우린 장봉도 일대를 드라이브할 수 있었다. 이곳은 뚜렷하게 명소라고 할만한 곳은 없지만 절벽이 깍아지른 멋진 풍광의 해안가, 예쁜 초등학교, 세군데의 해수욕장 등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다. 드라이브를 마치고 돌아오니 혜림원 앞 바닷가에서 갯벌체험을 하는 가족들이 눈에 띄었다. 아이의 비협조로 끝내 갯벌에 발을 담그진 못했지만 드라이브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었다.

 마지막 점심 식사, 마지막 만찬이다. 이곳의 음식이 어찌나 정갈한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건만 아직도 입에서 군침이 돈다. 식당에서 만난 손모아 사회복지사님과 기념 촬영을 하고, 우리와 짧은 인연을 맺었던 사랑 가족의 숙소에 들려 또 한번 추억을 담았다.

 손 선생님이 “다음에 또 오실거죠? 돌아가면 모두 잊어버리시는 건 아니죠?”라고 물을 땐 뭐라고 딱히 분명하게 대답할 수 없어서 참 부끄러웠다. 지리적 여건상 안산에서 배를 타고 이곳까지 자주 왔다 갔다 할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장봉혜림원에서의 봉사활동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끗이  씻을 수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흔히 장애인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정말 그럴까 의구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장애인의 몸과 정신 상태에 따라 다를 순 있지만 이들도 우리와 똑같이 느낄 수 있고, 요구할 수 있고, 슬퍼하기도 한다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장애인들은 불쌍한 존재이니 무조건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도 달라졌다. 조건 없는 베품 보다는 할 수 있는 건 스스로 하게 하는 것, 그게 정말 돕는 것이다.

 그날 이후 그리 긴 시간이 흐르진 않았지만 우리 가족 모두 한뼘은 자란 느낌이다. 이웃이 장애인들을 색안경 끼고 대한다면 이젠 당당하게 말할 것이다. 우리만 받아들인다면 이들도 우리의 당당한 이웃이 될 수 있다고. 또한, 언제 어디서건 장애인들을 만날 때 면 조금은 덜 어색하게 대할 것이다. 어떤 장애인이건 그들은 모두 또 다른 장봉혜림원의 사랑가족들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