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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실 마을을 다녀와서...
글쓴이 부천댁
날짜 09.12.26 조회 5342
도심 속에도 이미 가을이 한창이었다. 이름 모를 길가 나무들은 제 혼자 울긋불긋 단풍 옷을 입고 한껏 뽐내고 있었고, 바람은 지나는 사람들의 옷깃을 살짝 흔들어 움찔거리게 만드는 그런 가을이 한창이었다. 아마, 그래서일게다. 교보문화재단에서 ‘가족 농촌 자원봉사’에 참여자로 선정되었다는 메일이 무엇보다 기뻤던 것이 말이다. 게다가 물 맑고 공기 좋은 양평이라니!! 이미 두물머리의 고즈넉함과 팔당의 넉넉함을 알고 있는 내게 ‘양평’이란 늘 다정한 친구같은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같은 경기도란 이름아래 살고 있지만, 가야할 길이 멀고먼지라 새벽같이 일어나 아직 잠이 덜 깬 아이들 손을 잡고 국수역에 도착하니 9시. 벌써 두 시간을 달려온 여정이지만, 30~40분은 더 이동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 아이들의 얼굴엔 웃음기가 사라져버렸다....그러나 어찌하랴. 알차게 익어 노랗게 고개숙인 벼들로 가득한 논도 둘러보고, 이미 알곡이 떨어져나간 들깨의 고소함도 맡아보며 오늘의 목적지인 질울 고래실 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에서 마을로 가기위해선 야트막한 산을 넘어야 하는데, 그래도 아이들은 아이들인지라 서로 먼저 산을 오르려 달리기도 하고, 갑작스레 나타난 다람쥐를 보며 소리도 지르고, 한 켠에 죽어 잠들어 있는 뱀을 보며 핸드폰 사진도 찍으며 그렇게 산길을 넘었다. 다행히 늦지 않게 목적지에 도착하여 봉사 활동을 할 가족들을 만나 서로서로 인사를 나누고, 마을의 살림을 책임지시는 분들과 곁에 서 계시던 외할아버지 같은 삼촌분들....토끼삼촌, 나무삼촌, 도토리 이모까지.....어찌도 이름이 이리 정다운지....이미 주름으로 가득한 삼촌분들의 모습이었건만, 그 또한 오랜만에 난 삼촌 그대로의 느낌이었다. 그러니 어찌 어색함이 있었겠는가?? 회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우리의 첫 활동을 시작했다. 어른에게도 어이들에게도 낯선 이름의 ‘야콘’캐기. 야콘 냉면을 들어본 적이 있고, 방송에서 야콘캐는 모습을 본 기억이 있으나, 실제는 그 모습도 맛도 알지 못하는지라, 설레는 맘으로 야콘 밭으로 향했다. 가까운 거리라 걸어가기에도 충분했지만, 아이들은 트렉터를 연결해 만든 마차를 카고 덜컹거리며 이동했다. 도심 속에서 낳고 자라온 아이들인지라 농촌이라는 이름도 생소할터인데, 이런 작은 배려로 인해 아이들의 기억 속의 농촌의 모습이 더 행복한 그림으로 남지 않을까 싶다. 야콘은 마치 연근처럼 생겼다. 캐기 좋게 정리된 밭에 자리를 잡고 앉아, 줄기를 뽑아 올리자 알 굵은 야콘들이 주렁주렁 달려 나왔고, 그에 따라 아이들의 환호성도 커져만 갔다. 야콘은 캐서 며칠 두었다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했지만, 캔 직후 낫으로 껍질을 살짝 벗겨 먹어본 야콘의 맛은 기대이상으로 달고 시원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배추밭. 마치 초록색 꽃밭인양 흐드러지게 자라고 있는 배추는 아이들이 들기에 묵직한 정도로 속을 채우며 잘 자라고 있었다. 각자 한 포기씩 맘에 드는 배추를 골라 뽑아들고 의기양양해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란..... 그런데 각자 배추를 안고 흐뭇해하는 모습 사이사이로 고소한 향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너른 들판을 고소한 향으로 가득 채우며 타들어가는 깻단 사이로 콩줄기를 던져 넣어 익혀 먹는 콩사리란다. 아이들은 제각기 검게 익은 콩줄기를 잡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얼굴에 검댕을 붙여가며, 뜨거운 콩을 호호 불어가며 콩깍지를 까먹기 시작했다. 불에 살짝만 익히면 덜 익어도 배탈이 나지 않는 법이란 삼촌들의 말씀에 너도나도 뜨거운 콩깍지를 까서 초록 빛 도는 연한 콩을 입에 넣고 그 맛을 음미했다. 아마 그곳에 있던 몇몇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처럼 평소에 콩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터이다. 하지만 고소한 향과 경쾌한 타닥거림, 그리고 연기 가득한 들판 분위기에 취한 아이들은 그 어떤 간식보다 더 맛나게 콩을 먹었을 것이다. 그 기억은 아마도 머리에 희끗희끗 서리가 내려도 잊혀지지 않은 것 같다. 새삼 자연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시간이었다. 야콘 캐고, 배추 뽑고, 콩사리 했을 뿐인데 시간은 벌써 한 시를 향하고, 때문에 발걸음은 자연스레 식당으로 향했다. 청국장을 넣고 얼큰하게 끓여낸 김칫국과 직접 만든 두부와 도토리묵, 그리고 김치 등으로 정겨운 시골밥상을 받으니 없던 입맛도 되살아나는 듯 밥 한 그릇이 뚝딱 쉽게 넘어간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회관 마당에 앉아 가을의 산과 하늘과 들을 바라보자니 근심 걱정 생각나지 않고 그저 고요한 평화와 안식이 내 곁에 머무는 듯, 더 없는 행복감을 느끼게 했다. 이렇게 건강한 우리의 산, 들, 논이건만 요사이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이 곳 팔당 주변도 꽤 걱정이 많다고 한다. 사실 국가 정책에 대해 많이 알지도 못하고, 또 알고자 하는 노력도 미흡했지만, 그 터전에서 평생을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살아갈 농민들이 적극 반대하는 이레 대해서는 경제적인 논리보다 더 많은 대화와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연구로 풀어나가야 하지 않나 싶다. 잠시의 망중한을 털어내고 시작된 본격적인 봉사활동. 내가 속한 팀은 움집의 뼈대를 만들기 위해 벌목 작업을 하기로 했다. 바로 뒷 산에 올라가 적당한 굵기의 나무를 베어 운반하면 되는 작업이다. 모두들 기세등등하게 톱과 낫을 들고 산에 올랐는데....어라!! 작업이 생각만큼 만만치 않다. 나무를 베는 것도, 벤 나무를 방향에 맞게 쓰러뜨리는 것도, 또 그 나무를 움집 옆으로 옮기는 것에도 어찌나 많은 힘을 필요로 하던지. 아직 한창 젊은 나도 이러할 진데, 노인 분들만 사시는 이곳에서 이렇게 힘든 일을 어떻게 하시는지 걱정스러운 맘과, 다음 세대엔 누가 벼를 심고, 고추를 심고, 콩을 가꿀런지....하는 생각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따라온다. 내 스스로 역시 힘들고 어려운, 더군다나 합당한 보상조차도 주어지지 않는 농사일을 꺼리면서, 그 누군가가 이 길에서 씩씩하게 걸어가주길 바라고 있으니 - 이런 이기적인 맘은 언제쯤 버려질런지.... 맡겨진 활동을 끝낸 다른 팀들도 모두 모이고나자 마을회관의 마당엔 널찍한 떡판이 펼쳐졌다. 고래실 어머니들이 준비해주신 찐 쌀을 서로 돌아가며 치대자 보기만 해도 침이 꿀꺽꿀꺽 삼켜지게끔 맛난 인절미가 완성되었다. 어른, 아이 구분없이 머리를 맞대고 모여 입가에 콩가루를 묻혀가며 먹는 떡 맛이라니!! 게다가 고소한 두부와 서울서 마시던 막걸리와는 그 차원이 다르게 느껴지는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이고 나니 농촌의 삶이 이렇게 풍요로움과 맛난 시간들로만 채워져 있을 듯한 느낌도 살짝 들었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동안 농촌 체험을 하면서 느끼고 생각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예정된 활동이 모두 끝났다. 제가끔 어떤 모습으로 이 시간들을 기억할런지 모르겠지만, 우리 농촌의 현실과 앞으로의 생활들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좋은 기회가 된 듯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우리의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았으니, 이러저런 생각들도 있었겠지만, 고래실 가족분들이 준비해주신 야콘, 우리 밀, 게다가 밭에서 뽑은 배추로 두 손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명색이 농촌 봉사활동 참여였는데, 봉사를 했다는 기분보단 시골 외갓집에 놀러와서 재미나게 놀다, 할머니께서 차려주신 맛있는 점심을 먹고, 할아버지께서 농사지은 알찬 신토불이 농산물을 잔뜩 얻어간다는 느낌이랄까......한 편으론 죄송한 마음도 들고, 한 편으론 잘 쉬었다 간다는 느낌도, 조만간 다시 놀러와야겠다는 느낌도 들고....... 체험을 끝내고 돌아온지 벌써 며칠이 지났다. 계절은 조금 더 깊어져 가로수 나무들은 겨울 맞을 채비에 여념이 없어 나뭇잎들이 거리를 온통 감싸고 있는 요즘이다. 나는 고래실에서 돌아온 바로 다음 날로 우리가 밭에서 캐온 배추로 김치를 담궜다. 뽑을 때부터 묵직했던 배추는 속이 어찌나 알차게 찼는데 세 포기를 잘랐을 뿐인데도 그 양이 만만치 않다. 더군다나 맛은 어찌나 달고 고소하던지..... 평소에 김치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아이들도, 자기 손으로 뽑은 배추라는 것을 아는지 더욱 맛나게 먹어 보는 나 역시 뿌듯한 느낌이 든다. 끝으로, 농촌 체험 봉사활동은 개인적으로 참여하기가 참 쉽지 않는데, 이런 기회를 준 교보 다솜이 가족 자원봉사 담당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다. 짧은 시간의 참여지만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보게 해준,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체험을 통해 세상 보는 눈을 넓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기에 이런 활동이 좀 더 자주, 그리고 좀 더 많은 가족을 대상으로 이루워졌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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